Q. 어렸을 때 꿈과 이렇게 작가가 되시게 된 터닝 포인트가 된 사건이나 사람이 있나요? 완전 어릴 때는 엄마랑 여동생이랑 집에서 책 읽고 있으면 나중에 엄마가 말해줬는데, 제가 축구공 들고 나가면서 책 읽는 두 사람을 보면서 업신여기는 표정으로 “재밌나?” 이러고 갔대요. 근데 제가 지금 책을 만들고 있는 거죠. 저는 책은 거의 안 읽고 밖에서 공만 찼거든요. 그리고 동네에서는 공을 좀 찼기 때문에 축구를 잘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근데 그 정도로 끈기 있고 막 이런 타입도 아니었어요. 낯도 가리고. 그랬었다가 아마 고1때인가 학창시절에 장래희망을 내잖아요. 그때 제가 시인이랑 국어 선생님을 적었었거든요. 그때 선생님이 얘기해 주셨던 게 장래희망에 ‘시인’ 적어놓은 놈은 처음 본다고- 돌아보면 선생님들 입장에서 봤을 때 얘는 뭔가를 쓰는 애잖아요. 그냥 뭐 말썽도 가끔 피우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애는 아니지만, 얘는 ‘시를 쓰는 애야’라는 이미지가 있었겠죠. 왜냐하면 시를 계속 쓰고 백일장에서 입상도 계속하고 그래서 선생님들이 좀 챙겨주셨던 거 같아요. 여러 선생님들에게 ‘기택이는 그래도 시를 쓰잖아’ 약간 이런 이미지가 있었죠. (글 쓰는 걸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셨네요.) 그게 ‘글 쓰는 게 좋아’ 이런 감각은 아닌데 좋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저는 독서실 가면 공부 안 하고 혼자서 그냥 그 몇 줄짜리 글을 계속 썼어요. 밤새 쓴 적도 있고. 진짜 한 글자, 한 단어 이게 아닌 것 같은데 이 단어가 내 마음 표현하는게 아닌데 그러면서 막 국어사진 막 뒤지면서요. 그때 막 스마트폰이 있고 그럴 때가 아니잖아요. 그랬던 기억이 되게 많아요. 그리고 학교가서도 그냥 교과서 밑에다가 마음을 쓰는 거죠. 그러면서 단어를 맞추고. 저는 특히 운문 쓸 때는 그런 글자 수라든지 모음이 되게 잘 맞아요. 그리고 그때 또 한국 힙합의 태동기 아닙니까. 힙합을 하고 싶다는 친구들도 있었고 실제로 지금 힙합을 하는 친구도 있고 저희끼리 많이 어울렸었죠. 그리고 이 단어 어때 이러면서. 돌아보면 그런 경우가 되게 많았어요. 몇 명 안 됐지만 그런 친구들이 있었고, 그래서 ‘그럼 너는 힙합 할 거야? 나는 그러면 시인 할래’ 약간 이런 추억들이 좀 있어요.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놀면서 즐기는-) 글자 맞추는 게 재밌었어요. 왜냐면 워낙에 책을 안 읽고 이랬었으니까 새로 습득하는 맛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이제 집을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당시에 되게 컸어요. 뭐랄까 돌아보면 다른 집들도 그런 시기가 있을텐데, 가족의 어른들이 노후화되고 원래 생기를 잃어버리는 시기였던 것 같아요. 우리 사춘기 때 ‘그런 것들에서 벗어나고 싶다, ‘저기 가는 게 맞을 거야’보다 ‘일단 여기는 안 있고 싶어 더 이상은’ 그런 게 저는 좀 있었어서. 그러면 멀리로 가야 되는데 내가 멀리 가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은 아니고, ‘이제 스스로 돈 벌면서 살고 싶어’ 약간 그런 게 제가 속해 있던 가정에서는 많이 느꼈었어요. 저 말고 다른 분들도 그럴 것 같아요. 이제 그게 싫었던 거죠. ‘계속 이렇게 살아야지 어쩔 수 있나’가 아니라 아니 ‘어쩔 수 있고 싶어’라는 어떤 욕망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계기로 글자로 먹고 쓰는 일로 먹고 살아야지 해서 카피라이터 지망했던 거고. 근데 생각해 보면 19살 때 그런 꿈을 가지고, 26살 때 카피라이터가 된 거잖아요. 그럼 7년이 걸린 셈인데 그 뒤로 10년 뒤는 지금의 책을 만들고 있고, 돌아보면 저는 시인이나 국어 선생님을 원했었는데 어떻게 보면 시집으로 등장했었고, 그리고 뭐 다른 책들도 내고 있고 글쓰기 강의도 하고 있고 그러니까 결과적으로는 시인이나 국어 선생님 다 하고 있는 거죠. (그러네요.) 어렸을 때 적었던 장래희망을 생각해보면 꿈은 이룬 셈이라고 그게 막 엄청 뿌듯함이나 성취감이 있지는 않은데 돌아보니 그러네요. 왜냐하면 카피라이터 될 때는 제가 그만둘 줄 모르고 ‘제일 돈 많이 받는 카피라이터가 되어야겠다’라는게 있었거든요. 100일 뒤에 그렇게 될 줄 몰랐지만 처 맞고 나왔는데.(?) Q. 카피라이터가 되고 나서 광고회사는 짧은 시간을 다니셨는데, 지금 작가와 가르치시는 일은 이렇게 오랫동안 잘 이어져 오고 계시잖아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에게 이 일을 하는 다른 사람들도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을 때 그렸던 어떤 샘플링 할 수 있는 사람- 롤 모델- 이런 분들이 있었는데, 제가 막상 현업에 들어갔을 때는 동료 중에는 없었어요. 힘들어도 ‘내가 몇 년만 있으면 저렇게 멋진 사람 되겠구나, 저런 역량을 가질 수 있겠구나, 저런 표정을 가질 수 있겠구나, 저런 태도 함량할 수 있겠구나, 그러면 그만큼의 어떤 노고가 있네’ 하고 그냥 감수될 수 있는 부분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제가 있었던 팀이 당시에 한국에서 제일 광고를 제일 잘 만들고 퍼포먼스가 제일 좋은 팀이었는데, 사람들이 소위 말해서 학교 다닐 때 제가 학교에서 발표했던 그 카피를 쓴 장본인들이고, 아무튼 제일 잘하는 분들이었는데 실력은 그랬을지 모르겠으나 일단 인간적인 실력은 물론 저한테 보여줄 일은 없었겠죠. 그때 어떻게 보면 결정하기 편했던 게 ‘내가 몇 년 있으면 저런 사람이 된다는 거네. (그러니까 저런 카피라이터가 된다는 게 아니라) 저런 사람이 된다는 거네. 난 너무 싫은데.’ 라는 생각이 들어서 였어요. 라이프 스타일과 일 그 모든 게 합쳐진 게 그 사람이니까 저런 사람이 될 확률이 굉장히 높다는 생각을 하니 스트레스가 심했던 것 같고. 그 다음에 두 번째 회사에 갔을 때는 사람들은 되게 좋은데 일은 못했어요. 반대였어요. 일을 잘하면 일이 많아서 밤을 새고, 일을 못하면 일을 못해서 밤을 새고 주말이 없고. 그러니까 어쨌든 이 직업을 가지면 내가 20년 뒤에 팀장이 되어도 주말에 나와 밤을 새는데 이렇게 살고 싶진 않다. 이게 매몰되는 거잖아요. 그게 되게 두려웠던 것 같고 그럼 다른 걸 한번 찾아보자 생각했던 것 같아요. 지금 같은 경우에는뮤지션이 앨범 내듯이 저도 물론 제 거 낼 때는 밤새고 며칠 몇 달을 하죠. 근데 이제 그런 게 데일리 하지 않고, 자기 작업을 하는 저 같은 다른 동료들도 같은 고충을 겪고 있고, 서로가 자기가 되려고 하지 어떤 사람처럼 되려고 하는 경우는 잘 없는 것 같아요. 제 주변 의 그런 점들이 동료감으로 느껴져요. 내가 저 브랜드가 되기보다 나는 다음 작업을 이걸 해야지 하는 자기 것이 있다보니까 그런 게 되게 마음 편한 것 같고요. 회사 갔을 때는 다 개성이 너무 강해서 회사 사람들을 보면 그냥 광고인 특 이런 느낌이 있었어요. 학교 다닐 때 제가 광고인 같은 애였는데, 애들은 그냥 학생이었고. 광고 회사에 가니까 다 광고인만 있어요. 그러니까 이게 되게 커먼한 거죠. 구별되지 않고. 거기서 이제 남달라지려면 진짜 성격적으로 되게 특이하거나 어떤 그런 게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다 각자가 남다른 남다르게 살려면 전 제가 볼 때 중요한 거는 그 ‘남’이 있어야 되는 것 같거든요. 기준점이. 그러니까 제가 광고회사 했을 때 광고 선배들의 모집단은 저한테 매력적이지 않았던 것 같고, 지금의 모집단이라고 하면 일을 같이 하진 않지만 여기 마켓 나갔을 때나 책방에서나 이런 다른 독자분들이나 이런 분들을 만났을 때 여기가 되게 상쾌한 저는 느낌이 있고 그리고 따뜻한 느낌도 있어서 여기서 제가 조금씩 남다른 그런 맛을 제가 느끼는 것 같아요. 그 광고 신에서는 남다르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광고 회사에서는 이게 내가 들어갈 때는 남다르다고 생각해서 들어갔는데 이게 남다르지 않았던 거잖아요. Q. 남다른 분들이 주변에 많으시기도 하지만 지금의 태재님도 본인의 글을 쓴다거나 수업을 진행하실 때 어떤 기준을 가지고 남다르게 행하시는 것 같아요. 그런 특징을 유지하기 위해서 하는 일상적이고 사소한 일들이 있을까요? 글 쓰는 거랑 비슷한데 관점은, 사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양태는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봐요. 아침에 일어나고 씻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일을 하다가 이제 지치면 커피를 마시고 퇴근하면 시간이 되면 친구들을 만나고 뭐 그런 식으로요. 근데 그런 일상생활에 어떤 사소한 부분들이 있잖아요. 그게 되게 당연해지잖아요. 하루하루가 반복되면 그게 굳어버린달까요. 굳는다고 해야 되나 그게 좋은 걸 수도 있지만- 우리가 막 디스크가 생기는 게 있잖아요. 몸이 뻣뻣해지고 굳어버리는 게 계속 스트레칭을 하고 마사지를 하고 그래야 뭔가 좀 더 그런 가동 범위도 넓어지는거죠. 어떤 건 생각의 가동 범위, 감정의 가동 범위가 있다면 계속 주물러줘야 되는데 그게 제 개인적으로는 그게 운동인 것 같아요. 제 몸 상태 자체를 계속 유연하고 동적으로 만드는건데 근데 그게 꼭 스포츠는 아니에요. 물론 수영이랑 테니스랑 요즘에 러닝도 시작했지만, 그것도 그건데 저는 이제 집에서 일을 많이 하니까 집에서 제 업무도 보면서 집안일도 많이 해요. 근데 그게 되게 몸을 많이 쓰는 일이에요. 가령 설거지를 할 때 숙이죠. 그리고 바닥 청소를 할 때 또 허리를 숙이죠. 설거지가 하고 올릴 때 뒷꿈치를 들죠. 이렇게 몸을 움직이는 과정들이 저는 되게 동물적인 것 같아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표현이 있는데 사실 식물인간이나 동물적이라는 표현이 있잖아요. 식물이랑 동물의 가장 큰 차이점이 뭐냐면 동물은 그냥 움직인다가 아니라 고통을 피해서 움직일 수 있어야 동물인 거예요. 그러니까 여기서 뜨거워요. 그럼 뜨거운 곳에서 벗어나오는 것이요. 만약 불이 났어요. 여기 불이 뜨거우니까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동력이 있다는 것이 다르죠. 근데 식물은 사실 그게 없잖아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고.저는 제가 동물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계속 동물적인 상태를 유지하려고, 저의 동력을 높이려고 운동하고 움직이는 거에요. 사실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고, 그림을 많이 보고, 전시를 많이 다니고 그래서 문화적으로 향유된다 그 관점도 동의는 하는데, 몸이 굳으면 내가 어차피 인풋을 해야 향유가 되는 것인데요. 이 흡수력이라는 게 내가 안 움직이면 100이던 게 90, 80, 70까지 떨어지잖아요. 그렇게 내 몸의 흡수력이 떨어지면 과연 좋은 문화적인 인풋이 나를 좋게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몸 자체를 계속 100으로 유지하고 어떨 때는 110 이렇게까지 간다면 같은 걸 봐도 내가 더 강도 높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teje.official